에도사람들은왜고필(古筆)에열광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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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를 써 내려가며 현재를 살았던 사람들

들어가며 ── 왜 ‘오래된 필적’에 그토록 매료되었을까

에도 시대의 사람들은 놀라울 만큼 열정적으로 고필을 찾아다니고, 이야기하고, 감정하며, 수집했다.
그것은 단순한 골동품 취미도, 막연한 향수주의도 아니었다.

왜 그들은 수백 년 전 쓰인, 때로는 작가조차 분명하지 않은 단편적인 필적에 이토록 마음을 빼앗겼을까?

그 답은 에도라는 시대가 지니고 있던 (知)감성의 구조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고필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었다

오늘날의 감각으로 보면 고필은 흔히 ‘역사 자료’나 ‘문화재’로 다루어진다.
그러나 에도 시대에서 고필은 살아 있는 문화 자원이었다.

고필은

  • 배우는 대상이었고
  • 이야기하는 대상이었으며
  • 비교하고 음미하는 대상이었다

고필은 지금을 사는 인간의 감각을 연마하기 위한 거울과도 같은 존재였다.

왜 헤이안 시대의 글이 존중받았는가

에도 사람들이 특히 열광했던 것은 헤이안 시대의 가나 서(かな書)였다.
그 이유는 단순히 ‘오래되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헤이안의 글에는

  • 한자 중심 문화에서 일본어 표현으로 이행하는 전환점
  • 와카(和歌)와 결합된 섬세한 감정 표현
  • 공적인 언어가 아닌, 사적인 언어의 흔적

이 모두가 응축되어 있었다.
에도의 지식인과 서민들은 그 안에서 세련된 일본어의 이상형을 보았던 것이다.

잘려졌기에 더 가까워질 수 있었던 고필

고필절(古筆切)의 탄생 역시 이러한 열광을 가속시켰다.
두루마리나 책자의 형태로는 극히 제한된 사람만이 접할 수 있었던 명필이

  • 잘려
  • 붙여지고
  • 수감(手鑑)으로 재구성됨으로써

더 많은 사람의 눈과 손에 닿는 존재가 되었다.
이는 파괴가 아니라, 에도 사람들에게는 계승을 위한 기술이었다.

고필을 보는 일은 ‘교양’이었다

에도 시대에 고필을 논할 수 있다는 것은 중요한 교양의 일부였다.

  • 어떤 계통의 글인가
  • 어떤 격에 속하는가
  • 어디가 감상의 핵심인가

이를 말할 수 있다는 것은 단순한 지식 과시가 아니라, 아름다움을 보는 눈을 지녔는가를 증명하는 행위였다.

고필은 인격과 감성을 가늠하는 시금석이기도 했다.

고필 감상과 감정 문화가 낳은 ‘말하는 즐거움’

에도기에 성립한 고필 감상과 감정 문화는 고필 열기를 더욱 부추겼다.

중요한 점은, 감정이 ‘정답을 맞히는 행위’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감정이란

  • 이 글을 어떻게 위치 지을 것인가
  • 어떤 계보 속에서 읽을 것인가
  • 어떤 글과 나란히 놓고 볼 것인가

와 같은 문화적 해석의 제안이었다.

그래서 고필은 보는 대상인 동시에, 말하는 대상이 될 수 있었다.

에도 사람들은 ‘베껴 쓰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현대에는 ‘오리지널 지상주의’가 강하다.
그러나 에도 사람들에게 베껴 쓰는 행위는 가치의 저하가 아니었다.

  • 법첩
  • 임서
  • 수감

이 모두는 명필을 현재에 살아 있게 만드는 기술이었다.

고필을 배우고, 옮겨 쓰고, 몸에 익히는 것.
그것은 과거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대화하는 행위였다.

고필 열광의 본질 ── 과거를 다시 살아내는 감성

에도 사람들이 고필에 열광한 이유는 그 안에서 ‘과거 그 자체’를 보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이 발견한 것은

  • 자신들이 잃어버린 시간
  • 이상화된 언어의 형태
  • 현재를 비추는 또 하나의 가치 축

이었다.
고필은 과거로 도피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현재를 깊이 살기 위한 장치였다.

맺으며 ── 고필은 왜 지금도 우리에게 말을 거는가

에도 사람들의 고필 열광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었다.
그것은

  • 글을 읽고
  • 글을 보고
  • 글을 말함으로써

문화의 시간을 스스로 떠안으려 했던 태도였다.

그래서 고필은 지금도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필적에서 무엇을 읽어내는가?

에도 사람들의 열광은, 그 질문을 현대의 우리에게 건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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