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書)’와 ‘병(兵)’은 모두 하나의 ‘도(道)’이다
서예와 병법. 언뜻 보기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두 분야지만, 사실 그 바탕에는 공통된 전략적 사고와 마음가짐이 흐르고 있습니다.
병법의 고전 『손자병법』은 “병은 궤도다(兵者,詭道也)”라는 말로 시작되며, 유연한 사고와 침착한 판단을 중시합니다. 이는 서예에서도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으로 통제한다’는 서론(書論)과 맞닿아 있습니다.
서예는 단순히 문자를 따라 쓰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의 ‘도(道)’로서 단련되어 가는 과정입니다. 이 길에서는 병법적인 전략과 마음의 작용이 필수적이라는 인식이 예로부터 존재해 왔습니다.
‘세(勢)’를 읽다 — 필세(筆勢)와 국면
『손자』에는 “형태를 만들지 말고, 세를 만들어라(無形而造勢)”는 사상이 나옵니다.
서예에서도 ‘필세(筆勢)’라는 개념이 있듯이, 붓의 움직임에서 생겨나는 흐름과 기세는 단순한 글자 모양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한 획이라 하더라도 붓을 어떻게 시작하고 끝내는지, 먹의 양이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선에 담긴 에너지의 방향성과 압력이 달라지며 전혀 다른 인상을 줍니다.
이는 병법에서 “적보다 먼저 세를 장악한다”는 전략과 유사하며, 상황 속에서 가장 자연스럽고 효과적인 동작을 이끌어내는 힘이라 할 수 있습니다.
‘허(虛)’와 ‘실(實)’을 살리다 — 공간과 구성의 묘미
『손자』의 가장 유명한 구절 중 하나는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知彼知己,百戰不殆)”입니다. 말은 서예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우리는 서예를 배울 때 먼저 고전(본보기)을 익히는 것, 즉 ‘적을 아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동시에, 자신의 버릇, 필압, 감정의 흐름 등을 파악하는 ‘자신을 아는 것’도 필수입니다.
단순히 본보기를 정밀하게 따라 쓰는 것만으로는 서예의 본질에 접근할 수 없습니다. 신의 내면과 기술적 특성을 파악하고, 그것을 어떻게 살릴지를 고민하는 것—이것이 자신만의 전략으로서의 서법입니다.
‘지피지기(知彼知己)’ — 자신을 알고 본보기를 넘어서다
『손자』의 가장 유명한 구절 중 하나는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知彼知己,百戰不殆)”입니다. 말은 서예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우리는 서예를 배울 때 먼저 고전(본보기)을 익히는 것, 즉 ‘적을 아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동시에, 자신의 버릇, 필압, 감정의 흐름 등을 파악하는 ‘자신을 아는 것’도 필수입니다.
단순히 본보기를 정밀하게 따라 쓰는 것만으로는 서예의 본질에 접근할 수 없습니다. 신의 내면과 기술적 특성을 파악하고, 그것을 어떻게 살릴지를 고민하는 것—이것이 자신만의 전략으로서의 서법입니다.
‘물처럼’ — 부드러움이야말로 최대의 강함
『손자』는 전쟁의 극의를 ‘물’에 비유합니다.
즉, 유연하면서도 형태를 바꾸며 모든 국면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승리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붓 또한 물처럼 ‘부드러운 도구’입니다. 힘을 지나치게 주면 붓끝이 뭉개지고, 너무 약하면 끊어집니다.
이 섬세한 균형 속에서 강과 약, 빠름과 느림, 진함과 옅음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서예에서의 ‘승리’, 즉 아름다움의 완성에 직결됩니다.
서예에 있어서의 ‘작전 수립’ 예시
병법과 서법의 공통점을 실제 연습 과정에 대입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 서법의 실천 | 손자의 병법 |
| 본보기를 고른다 | 적의 상황을 파악한다 |
| 먹과 종이를 고른다 | 장비와 지형을 정비한다 |
| 구성과 시작을 계획한다 | 전략을 세운다 |
| 획의 순서와 리듬을 설계한다 | 진형과 전술을 구성한다 |
| 쓰면서 수정한다 | 상황에 따라 전술을 유동적으로 조정한다 |
결론: 서예 속에도 전략이 있다
서예는 단순한 미적 표현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 이해, 상황 판단, 전체 구성력, 순간적인 결정과 수정 능력을 요구하는 매우 전략적인 행위입니다.
『손자병법』의 가르침을 통해, 우리는 서예라는 행위 안에도 국면을 읽는 힘, 공격과 후퇴를 판단하는 능력, 유연한 사고의 중요성을 다시금 인식하게 됩니다.
붓을 쥔 손끝에서 나오는 것은 단순한 선이 아니라, 나만의 ‘승리 루트’를 그려내려는 의지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서법과 병법을 관통하는 ‘도’의 공통점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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