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심이 말하는 정(静)과 동(動), 서예의 생명은 붓법에 깃든다
서예의 본질은 ‘선’에 있고, 선은 ‘붓법’에 깃든다
서예란 단순히 글자의 아름다움을 넘어서 마음과 몸의 운동이 남긴 흔적입니다. 그 표현의 핵심이 되는 것이 바로 ‘중봉(中鋒)’과 ‘측필(側筆)’이라는 두 가지 붓법입니다.
같은 ‘一’자나 ‘永’자를 쓰더라도 붓의 각도를 바꾸면 선의 생명력과 기운은 전혀 다르게 나타납니다.
중봉이란 ── 선의 중심을 관통하는 ‘골법’
중봉은 붓의 중심축(붓심)을 선의 중심에 두고 운필하는 방법입니다. 붓을 수직으로 세워 종이에 거의 직각이 되도록 운필합니다.
- 선이 곧고 힘차며 흔들림이 없다
- 먹의 번짐이나 갈라짐이 적고 균일한 흡수가 가능
- ‘정통적’, ‘진지한’, ‘바른’ 인상을 준다
어울리는 서체: 정사각형 스타일, 씰 스타일, 사무 스타일
측필이란 ── 붓을 기울여 ‘기(気)’를 흐르게 하는 기법
측필은 붓을 비스듬히 기울여 붓의 옆면을 사용하여 운필하는 방법입니다. 붓의 각도에 따라 먹의 농도와 붓압이 변하며 선에 리듬과 억양, 움직임이 생겨납니다.
- 선이 다채롭고 부드러우며 감정적인 표현이 가능
- 갈라짐, 농담 등 먹의 풍부한 표정이 드러난다
- 선에 ‘여유’와 ‘호흡’이 깃든다
어울리는 서체: 러닝 스타일, 필기체 스타일, 가나 서예
고전 작품에서 보는 중봉과 측필의 활용
왕희지의 『난정서』 ── 중봉의 골격과 측필의 기운
중국 서예사 최고의 명작으로 꼽히는 『난정서』는 중봉과 측필을 절묘하게 활용한 대표작입니다.
- 기본 구조는 중봉으로 안정감 있게 잡고
- 필세의 완급과 기운의 흐름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측필로 생기를 부여
- ‘之’, ‘道’, ‘流’ 등 러닝 스타일적 글자에는 측필의 흐름이 두드러짐
- 중봉과 측필의 대비가 서예에 ‘정과 동’, ‘음과 양’의 균형을 부여
공해(쿠카이)의 『풍신첩』 ── 측필의 절정
일본 서예의 금자탑인 고보대사(弘法大師) 공해의 『풍신첩』은 측필의 표현력을 극대화한 작품입니다.
- 붓이 비스듬히 달리며 번짐과 갈라짐 속에 감정이 묻어남
- 시작 획의 거침, 끝 획의 빠짐 처리 등은 측필 특유의 맛
- 공해는 밀교의 ‘기’와 ‘숨결’을 글자에 불어넣기 위해 붓의 각도와 기의 흐름을 일치시켰다고 전해짐
서론(書論)에서 보는 중봉・측필과 ‘기운생동(気韻生動)’
‘기운생동’이란?
기운생동은 동양 미술에서 서화나 그림에 내면의 기(気)가 자연스럽게 흐르며 생생한 생명감을 드러내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붓법, 특히 중봉과 측필의 적절한 활용을 통해 선에 기운이 깃들게 되는 것이 서예의 핵심이라 여겨졌습니다.
運筆之妙、貴在気機通貫
――운필의 묘미는 기의 흐름이 꿰뚫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손과정 『서보』에서 인용
즉, 중봉으로는 ‘뚫린 기’, 측필로는 ‘흐르는 기’를 표현할 수 있고, 이 둘을 자유롭게 오가면서 글씨는 비로소 ‘살아 움직이게’ 되는 것입니다.
연습과 응용: 당신의 붓에 ‘심’과 ‘기’를 담다
중봉 연습법 (永자 팔법 활용)
- 붓을 수직으로 세워 획 하나하나를 정성스럽게 씀
- 밀고, 당기고, 멈추는 동작을 의식하며 선의 균형 유지
측필 연습법 (러닝 스타일・필기체 스타일 연속 쓰기)
- 붓을 약간 기울이고, 글자의 연결에 호흡을 맞춤
- 먹의 농담을 살리고 속도의 변화 느끼기
정리: “붓의 각도”는 곧 “마음의 각도”
붓을 세우면 ‘정(正)’과 ‘뼈(骨)’가 드러나고,
붓을 기울이면 ‘정서(情)’와 ‘살(肉)’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중봉과 측필의 활용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글을 쓰는 이의 정신과 작품의 표정을 만들어내는 ‘서예의 호흡’입니다.
서예를 배우는 사람은
우선 중봉으로 ‘뼈(骨)’를 세우고,
다음으로 측필로 ‘기(気)’를 흐르게 하여
비로소 살아 숨 쉬는 글을 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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